내가 영화를 볼 때 좋아하는 장면들 중 하나는,


캐릭터 내면의 고독함을 드러내주는 짧은 장면이다.




조금 모자라고 순박한 포레스트 검프가 제니에게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냐고 하는 장면,





허영과 자부심으로 가득찬 구스타브의 아침 식사 장면,





자신만의 정의에 대한 집착과 자신감에 차있는 트래비스가 포르노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장면,





죽으러 끌려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비꼬고 욕하는 데이지 도머그가 잠깐 심오한 표정을 짓는 장면 등등.



이런 세심한 부분에서 캐릭터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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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잘하는 것, 재능을 보이는 것을 끌어내어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정말 하고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할까?



2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에

서로를 서로의 불완전함 속으로 끌어당긴다.

불완전하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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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뮤지컬 영화들은 뮤지컬 넘버를 최대한 '영화적으로' 리얼하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공연을 본다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영화에서 대사를 하는 것처럼 연출을 하는 거지. 

현실적인 공간에서 현실적인 모습으로.

이 영화는 뮤지컬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들에서 

오히려 예전 뮤지컬 영화들처럼, 무대를 영화 안으로 가져온 느낌이다.

무대라는 공간적 제약을 영화로 가져오면서 없애버리고 

더더더 큰 무대에서 화려하게 그 공연을 펼친다.

인트로 씬이 그 진수를 보여준듯.


2.

꿈과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의 연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로의 다름에 반하고, 그런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인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과정엔 온갖 현실적 문제들이 가득하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는 변명으로, 

또는 '내 꿈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으로 포장되어 표출되고 그것은 결국 갈등이 된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거야." 

"너 그게 아니잖아."

그렇다고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멀어지고 헤어진다.


3.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 남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

나처럼 학교도 때려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싶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그 한 곡이 참 울컥했을 거다.

누군가는 철이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내가 내 삶을 망친다고 한다.

그래도, 날 만드는 건 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걸 상기시켜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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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2016)



복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의 능력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았을 때.

그리고 날 배신하고 떠나갈 때.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해도 피해자는 똑똑히 기억한다.

어떻게 날 아프게 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그랬는지.


자신이 한 행동과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리고,

결국 자신이 싫어했던 사람을 닮아가는...


최고의 복수 방법은

내가 느낀 감정을 그가 느끼게 하고,

그 과정에서 내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

그가 경멸하고 모욕했던 나의 능력으로.


똑같이 무시당하도록,

자존심이 짓밟히도록,

배신당하도록,

버림받도록.


약하다고 비난했던 그에게,

약하지 않은 모습을 느끼게 하는 것.


가장 세련되고,

통쾌한 복수.




"누굴 사랑하면, 노력해.

 조심해야해.

 그 사람을 영원히 놓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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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 (Looper, 2012)

시간여행물에 관심이 많은 것은 내가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들로부터 

잘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주 자잘한 예를 들자면, 고3 마지막 체육대회 축구 때 우리반은 0대1로 지고 있었고, 

경기 후반부에 내가 멀리서 날린 중거리슛이 골대를 맞고 밖으로 나간 것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가끔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망각이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이라는 말이 있듯, 

또렷하게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 늘 좋은 쪽으로 우리를 인도하진 않는다.

(주로 싱글RPG) 게임에 세이브포인트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원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수많은 실수와 후회로부터 자유로워질지 모른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과거로 보내 과거의 킬러들에게 살인청부를 하는 이 영화의 무서운 설정도, 

과거를 바꿔-상대적으로 미래인-현재에 만족하고 싶은 상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과거들이 바뀐다고해서 현재의 상황이 마냥 달라지기만 했을까.

어쩌면, 내가 어릴 때 죽기 직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을 때부터 나는 이렇게 살도록 

운명적으로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보았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죽으려는 엄마를, 

 자신의 아내를 위해 살인하려는 남자를, 

 그리고 남겨져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는 분노한 아이를. 

 그 길은 흘러흘러 다시 돌아온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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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홈즈 (Mr. Holmes, 2015)

이언 맥켈런이 연기하는 90대의 홈즈를 보고 싶었다.

기발함과 날카로움이 아닌 건망증과 허술함으로 생애를 마무리해가는 할아버지.

영특한 사건 해결은 이 영화에 없다.

점점 자신의 능력을 잃어가는, 

한 시대를 풍미한 탐정이었던, 

할아버지의 일대기 마지막장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내 도움이 필요했지.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간절하게 바랐던 거야. 

 난 자세히 설명했어. 

 그럼 그녀가 만족할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난 두려웠어. 

 이기적이었던 거지..."

논리와 이성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논리로 사건의 진실을 추론할 수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꿀벌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말벌의 심기를 건드려 나를 공격하게 만들고, 

나를 다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꿀벌을 꾸짖진 말아줘요. 


그들은 잘못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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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 (The Fault in Our Stars, 2014)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 우리는 이별한다.

하지만 무한한 것은 있다.

그 무한함이 유한함이 되지 않는다면 평생 행복하겠지.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그게 고마워."

짧은 생의 답을 찾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헤이즐.

그리고 어거스터스가 마무리한 뒷부분.



"살면서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 상처를 받을지 선택할 수는 있어요. 

 난 내 선택이 좋아요. 

 그애도 자기 선택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모든 게 원하는대로,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더 그렇다.

"세상은 소원을 들어주는 공장이 아닌가봐."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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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 (2014)

작년에 본 한국영화 중 탑을 고르라면 단연 이 영화다.

안재홍이 만섭이고 만섭이가 안재홍인 영화. 


영화의 스토리는 꽤 유치해보일 수 있지만,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어떤 것보다 현실적이고 무겁다.



"넌 꿈이 뭐냐?"

"저는.. 연애하고 싶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해."


복학한 만섭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두가지. 

연애와 족구.

모두가 취업을 위해 달려가는 세상에서 만섭의 생각은 

그저 어리석고 멍청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너한테.. 족구는 뭐냐?" 

"재밌잖아요"

미래의 행복한 자신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게 맞는지, 

내가 지금 행복한 것을 하는 게 맞는지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는 것이다.



"좀 쪽팔리면 어떠냐? 만섭이를 봐. 

 만섭이가 아무리 병신같아도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잖아!"


"남들이 싫어한다고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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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다 세상을 떠난, 

  그리 가깝지 않았지만 나의 동료였던 Schad의 명복을 빕니다.>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너무나도 참혹하고 끔찍한, 지옥같은 전쟁터를 경험한 사람들은 둘로 나뉜다.

아예 무너져버리거나, 그것에 중독되어버리거나.

죽음을 늘 곁에 두고 폭발물을 제거하는 그에게는 

집에서의 '안전함'이 더 불안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행복과 편안함이 되어야할 가족과의 삶이 이제 무의미하게 되어버린 그를 보며, 

그 모습이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네가 사랑하는 것들이 더이상 특별해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어.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은 한두가지로 줄어들게 된단다. 

나같은 경우엔 한가지야."

잔인한 장면 없이도 보는 사람의 숨이 막히고 이내 지쳐버게 되는 영화.

'아바타'를 누르고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의 감독 캐스린 비글로의 전남편)


"어떻게 하면 폭발물을 그렇게 해체할 수 있지?" 

"죽지 않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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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2014)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연출이었다. 


러닝타임 내내 끊어지지 않으며(끊어지는 장면이 있긴 있다) 이어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런 연출적 부분을 알아채지 못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지각은 했으나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내게 이 연출이 더 대단하게 다가온 이유는 

'영화와 달리 편집 없이 이어지는 연극'을 표현한 것 뿐만 아니라 

'연극처럼, 삶은 편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내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연극과도 같다. 


어디에도 편집점 같은 것은 없으며, NG 따위 없이 연극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리건 톰슨에게 영화는 자신의 삶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기라는 껍데기에 갇혀 '버드맨'의 삶을 살며 가족을 등한시했고, 

그 껍데기가 걷힌 이후에 그에게 남은 건 없었다.


결말의 해석이 어떠하든, 그는 진짜 삶을 잠시나마 느꼈을 것이다.



"I don't exist."라는 대사와 하나가 되며.





창 밖으로 날아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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