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너스 (Prisoners, 2013)

드니 빌뇌브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된 게 재작년이다.


그때도 그의 작품은 파주아울렛 3관에서 상영됐다. 



귀신이 나온다는 그 3관은 작은 규모 덕에 보통 흥행력이 부족하거나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밀리는 작품들이 상영되는 관이다. 


7개 관 중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구조이지만 다양한 영화를 보는 취향 덕에 

3관에서 가장 많이 보는 것 같다.


각설하고, 이 영화는 '어떻게 사람은 죄악과 가까워지는가, 

어떻게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깊은 신앙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신의 뜻에 도전하려는 자, 

분노로 가득차 직접 정죄하여 신의 뜻을 이루려는 자, 

감정에 이끌려 악행을 가까스로 합리화하며 동조하는 자, 

악을 선의 탈을 쓴 악으로 없애려는 자, 

자신도 악을 행했지만 다른 악을 막기위해 악을 행하는 자, 

살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악에 동조하는 자.

수많은 합리화와 자기 변명은 악을 악인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든다. 


아니, 무엇이 정말 악인가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을 하다 

결국 그 질문의 답을 내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수많은 트라우마와 고민들로 덮여버린 미로에 갇힌 채 prisoners가 된다.

구덩이에 빠져 구원을 기다리는 존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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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인간은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데 노력해왔다. 


인간을 창조한 신과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물어보겠는가?

아마 가장 유력한 질문은 "왜 우리를 만들었나요?"일 것이다.

불가지론자면서, 늘 종교에 비판적이었던 리들리 스콧이 만든 이 영화는

기독교 사상의 근간에서는 벗어나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기독교적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신과 인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인간과 그들의 능력으로 만든 로봇에 투사하면서 

여러 생각할 점을 만들고 있다.

인간과 매우 흡사한 로봇 데이빗8과 할로웨이 박사의 대화.



"왜 나를 만들었나요?" 

"그냥 우리가 만들 수 있으니까" 

"창조자에게 그런 대답을 듣는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울지 생각해 보셨나요?"

신에 대한 인간의 인식 변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서양 문명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가 

건축, 문학의 파괴와 재정립을 야기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에 큰 의미가 없다면? 우리가 생각한 신의 권능과 위엄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면?


웨이랜드와 쇼의 대화.




"만약 그들이 우릴 만들었다면, 당연히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지"
"무엇으로부터 구원한다는 거죠?" 

"당연히, 죽음이지"

하지만 (인간의 창조자인) 엔지니어의 반응은...



우리는 데이빗8을 통해 피조물(혹은 창조주)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자식들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죠" 

"작은 물줄기가 큰 강을 이루리라"

"때때로, 새로 창조하기 위해선 먼저 파괴해야 하죠"


만약 당신이 신이라면, 당신이 만든 피조물이 당신에게 찾아와 

"나도 피조물을 만들어냈소. 왜 나를 만든 거요?"라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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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자베르를 그저 나쁜 사람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는 그의 신념에 맞게, 정확한 법의 집행으로 신의 뜻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발장은 가석방 기간 중에 감시를 피해 도망간 죄수일 뿐이다.

그런 발장이 자신을 살려주고, 자신도 발장을 살려주게 된다.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고 존재가치마저 지워버린 발장을 보며 자베르는 절규한다.

도둑이자 탈옥범에게 빚을 지고 살 순 없다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지옥이라 울부짖으며 몸을 던진다.



"다가서면 멀어져, 별들은 어둡고 차가워. 

 잡을 수 없는 세상의 허공을 바라보네. 

 이 세상에서 벗어나리. 

 장 발장으로부터. 갈 곳은 없어. 

 이렇게 살아갈 순 없어."



자신의 신념에 목숨까지 걸 정도였던 자베르.


그 또한 '불쌍한 사람들'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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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Source Code)


누구나 한번쯤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로 인해 바뀔 미래도 상상해본다.

그만큼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이 많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모순(타임 패러독스) 때문에 논리적으로 비판을 거세게 받기도 한다.

가령, 나는 미래에서 과거를 바꾸러 왔는데 과거의 내가 죽어버린다거나 하는 이유로 


내가 미래에 존재할 수 없다면? 


골치 아파진다.

그래서 이걸 땜질하기 위해 평행세계 설정을 끌어오게 되고, 


점점 장황해지고 복잡해지고..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어쨌든 이 영화도 시간여행을, 그 중에서도 타임루프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도 매우 흥미롭지만, 


그 과정에서 시간과 행복에 대해 주인공이 얘기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점이 있다.




"만약 당신의 남은 삶이 1분도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뭘 하겠어요? ... 

 난 당신과 또 키스하겠어요"

죽음을 반복해 경험하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평생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 할 것이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몸은 점점 노화하고 있으며, 


죽음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또 한번의 죽음 앞에 선 콜터와 크리스티나.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요"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예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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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데이빗 핀처는 나의 소소하고 별 의미 없는 생활도 멋진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감독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여자친구한테 차이고나서 찌질한 복수를 위해 만들었던 사이트가

나중에 페이스북이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저 명함씬.

수백억, 수천억을 넘게 벌어들인 것과 상관 없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시니컬하게 저 명함을 건네고 싶었던 것.


물론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시니컬하지 않지만.


프로이트는 인간이 이루는 모든 성취나 업적이 다 이성을 꼬셔보려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했다.

저커버그라고 다를 건 없다. 


그의 원초적 찌질함이 페이스북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멋지게 승화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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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달달한 멜로 영화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사랑은 전혀 현실적이지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덮어주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현실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식 때 흘러나오던 노래 속에서 아내가 불륜남과 샤워하는 모습을 보고 이성을 잃어 

남자를 패고 트라우마가 생긴 팻.

남편이 사고로 죽고 그 외로움을 섹스중독으로 풀다 직장에서 해고된 티파니.

외로움과 불안함의 끝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게 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된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마음을 할퀴기도 하고, 

자신의 바닥인 모습도 보여주게 된다.



"매번 호의를 베풀어도 돌아오는 건 없어요. 내게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내 안에 더럽고 추한 마음이 있지만, 난 그걸 좋아해요. 다른 부분들 만큼이나! 

 당신도 그럴 수 있어요?"



마음의 상처를 함께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사람을 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삶이) 손을 내밀 때, 그걸 잡아주지 않는 것은 죄악이고,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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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그녀)

사실 난 이런 타입의 영화를 즐겨 보진 않는다. 


재작년 이 영화를 처음 보면서 중간에 조금 지루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독특한 주제와 정말 예쁜 색감, 그리고 주옥같은 대사들이 

이 영화에 대해 좋은 기억을 남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대상은 OS의 AI랑 연애하고 

섹스(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까지 하는 주인공 씨어도어나 

전설적인 문어발 연애를 하는 '그녀' 사만다가 아니라, 

씨어도어의 친구 에이미였다.

남이 볼 땐 정말 별 거 아니라 느껴지는 다큐멘터리에 자신의 삶과 가치를 투영시켜 완성해나가는 

그녀의 많은 부분이 내 모습과 닮아있는 듯했다.



"난 늘 너무 생각이 많아서.. 내 스스로를 의심할 수백만가지의 방법을 찾아내곤 하잖아.. 

찰스가 떠나고 내 그런 성격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는데.. 

그러니까 결론은.. 우린 여기에, 그냥 잠깐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 자신이 즐거웠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다 X까라 그래"


가끔은 너무나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뒤로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내 미래의 시간들을 현재의 내가 잡아먹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들이 현재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미래의 행복한 자신을 상상하며 달린다는 생각도 한다.

난 사실 거창한 인생의 목표 따위는 없다. 

내 자아 실현은 나의 소소하고 작은, 행복의 순간순간마다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었던, 꿈이었던 사람이 나에겐 내 자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미친 짓이니까.. 

사랑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미친 짓 같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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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카데미 남우 주/조연상을 모두 먹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다. 누가 이 영화의 론 우드루프를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재수 없는 변호사 믹 할러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겠는가.

근데 더 충격적이었던 건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레이언이었다. 


진짜 별 관심도 없던 배우였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영화와 영화배우에 대한 나의 식견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에이즈 진단을 받고, 그렇게 방탕하게 살던 론이, 자기가 좋아하는 스트립 클럽에 와서, 여자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술을 마시며 신에게 읊조리는 이 장면이 굉장히 아프게 느껴졌다.

좋은 영화는 재밌으면서 생각할 점도 많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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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가장 심장 떨리는 장면.

타란티노는 단 몇 분의 오프닝씬에서 한스 란다의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소름 끼치도록 명확히 각인시켰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스트루델 먹으며 그냥 이야기할 뿐인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무엇보다 큰 공포를 느낀다.

타란티노가 왜 훌륭한 감독이면서 뛰어난 이야기꾼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자, 크리스토프 발츠가 어떻게 이 영화
로 11개의 주요 시상식 주/조연상을 휩쓸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토막이다.

나는 믿을 거야 타란티노 믿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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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핀처의 세련되고 긴장감 넘치는 편집 스타일이 잘 드러난 대표적인 씬이 '소셜 네트워크'의 이 씬인 것 같다.

무한도전에서도 나왔던 영국 왕실 조정대회 헨리 로얄 레가타 씬인데 1분 40여초의 시간동안 굉장히 촘촘하고 빠르게 장면을 진행시켰다.

그리그가 작곡한 "Hall of the Mountain King"을 음악감독 트렌트 레즈너가 현대적이게 편곡하고 장면 상황에 맞게 박자까지 조절하면서 거의 완벽한 씬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소셜 네트워크'를 다른 감독이 맡았으면 영화가 이렇게 재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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